佛/불교란 ?

[스크랩] 경전의 계통

산사랑의 추억 2014. 6. 25. 16:31

 

경전은 1)삼장  2)대장경  3)팔리 삼장  4)티벳 대장경  5)한역대장경  6)위경으로 분류합니다.

 

1. 삼장

 

경(經)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수트라(sutra)라고 하는데, 이 말은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불교 이전의 바라문교와 자이나교, 그 이후에 일어난 인도의 모든 철학파에서 수트라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원래 수트라(sutra)는 "실끈"이라는 뜻으로 한 가닥의 실로 온갖 아름다운 꽃을 엮어서 화환을 만들어 머리를 장식했던 것입니다.

 

이것에 착안하여 꽃에 비유할 수 있는 중요하고 훌륭한 짧은 문구를 모아서 엮은 것을 수트라라고 하였으며, 따라서 수트라의 본래 의미는 산문으로 된 짤막한 금언이나 격언을 모은 것이며 시구나 게송 등 운문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2. 대장경

 

불교의 경전이나 논서(論書)를 집합한 총서를 대장경(大藏經) 또는 일체경(一切經)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총서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집니다.

 

가장 먼저 이루어진 총서는 팔리어 삼장(三藏)이며, 초기불교의 경전으로서 붓다가 설한 가르침인 경장(經藏)과 계율과 교단의 규칙인 율장(律藏)과 제자들이 교법을 연구한 논장(論藏)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단, 팔리어 삼장에 대승경전은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두번째로 들 수 있는 총서가 "티베트대장경"입니다. 이경은 티베트어로 번역된 일체경(一切經)이라는 말입니다. 7세기경부터 번역이 시작되어 9세기에는 대부분이 완성되었고, 그 후에도 계속 번역되어 훗날 티베트대장경이 성립되었습니다. 인도에서는 불교가 거의 소멸되었기 때문에 후기 인도불교의 경론은 티베트지역에 남아있는 것이 많으며 티베트대장경은 13세기 이후 수 차례에 걸쳐 복판 출간되었습니다.

 

셋째, 대장경이라고 하면 우리는 "한역대장경"을 연상합니다. 이것은 중국에서 번역된 경전이나 논서(論書)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특히 중국 불교학자들의 저작도 포함하여 편집한 것으로 대승(大乘)과 소승(小乘)의 경(經), 율(律), 논(論) 모두를 포함하고 있어 그 분량이 가장 많습니다. 한역대장경은 번역이 시작된 2세기부터 1000년에 걸쳐 번역되었으나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3. 팔리삼장

 

팔리어로 씌어진 불교 경전의 총칭입니다. 삼장(三藏)이란 경(經) 율(律) 논(論) 셋을 잘 간직하여 담고 있는 광주리라는 의미입니다. 석가세존 입멸 후 100, 200년이 지나자 불교 교단은 여러 부파로 분열하였고, 각 부파는 옛 전승을 내세워 그들 부파만의 독립된 삼장을 갖게 됩니다.

 

이때부터 경전의 용어도 일치하지 않아 팔리어, 각종 속어, 산스크리트어 등으로 엮어지고 또, 전해졌습니다. 팔리어는 원래 서인도의 언어였으며, 석존 입멸 후 초기교단이 서인도로 확대됨에 따라 경전이 팔리어로 번역되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경 아쇼카왕 시대에 마힌다(Mahinda)에 의해 불교가 현재의 스리랑카로 전해졌습니다. 이 때 스리랑카는 팔리어를 불교용어로 사용하였는데 이후 이 전통은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등의 동남 아시아에 확산되어 남방불교권이 형성되었습니다.

 

팔리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율장(律藏)은 경분별부(經分別部), 건도부, 부수(附隨:부록)로 되어있으며, 경분별부는 계율의 본문을 분별하여 해설한 것으로 대분별(大分別)과 비구니분별(比丘尼分別)로 나누어져 있습니.

 

건도부는 교단의 제도와 규정에 대한 것으로 대품(大品)과 소품(小品)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경장(經藏)은 장부(長部), 중부(中部), 상응부(相應部), 증지부(增支部), 소부(小部)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장부는 붓다와 제자들의 언행을 모은 긴 경전이며, 부는 중간 정도로 긴 경전이며, 상응부는 짧은 경을 내용에 따라 분류하여 모은 것이며, 증지부의 짧은 경은 교법의 수에 따라 1법에서 11법으로 모은 것이며, 소부는 앞의 4부에서 빠진 것을 모은 것입니다. 논장(論藏)에는 법집론(法集論) 분별론(分別論) 계설론(界說論) 인시설론(人施設論) 논사론(論事論) 쌍대론(雙對論) 발취론(發趣論)이 있습니다.

 

이외에 교리강요서, 경전주석서, 사서 등이 있는데 이들을 일괄하여 장외(藏外)라고 통칭하며,. 부파불교의 교단 내에서 지금까지 삼장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것은 팔리어 삼장뿐입니다.

 

팔리삼장은 19세기 유럽 학자들의 연구와 출판에 의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리스 데이비즈(Rhys Davids)가 영국 런던에서 팔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를 설립한 이래 팔리 삼장의 원전 및 영역본은 유명 학자들의 협력을 얻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출판되었습니다. 현재 삼장은 출판이 완료되었고 장외(藏外)의 문헌도 다수 간행되었다. 일본에서는 장외(藏外)의 문헌까지 약간 포함하여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으로 번역 출판하였습니다.

 

 

4. 티베트대장경

 

티베트어로 번역된 경전의 집성을 "서장(西藏)대장경" 또는 티베트대장경이라고 합니다. 내용은 크게 칸규르와 텐규르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앞의 것이 불설부(佛說部), 뒤의 것이 논소부(論疏部)입니다. 율장(律藏)에 해당되는 전적은 불설(佛說)로서 칸규르에 들어가 있으나 그에 대한 주석은 텐규르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각 부의 세부적인 배열 순서는 판본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칸규르를 율(律), 반야(般若), 화엄(華嚴), 보적(寶積), 제경(諸經), 비밀(秘密)의 6부로 분류하고 때에 따라서는 제경(諸經)으로부터 열반부(涅槃部)를 독립시킵니다. 텐규르는 찬송(讚頌), 비밀(秘密), 반야(般若), 중관(中觀), 경소(經疏), 유식(唯識), 구사(俱舍), 율(律), 불전(佛傳), 서한(書翰), 인명(因明), 성명(聲明), 의명(醫明), 공교명(工巧明), 잡다한 제부(諸部)로 분류합니다.

 

7세기 초에 고유의 문자를 제정했던 티베트에서는 779년부터 역경사업을 착수하였는데, 824년에는 티베트 불전 목록으로 현존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덴카르마 목록>이 작성되었으며, 여기서는 당시까지 번역되었거나 번역 중인 대승과 소승 및 현교와 밀교의 모든 경전과 논서의 제목을 23항 734부로 분류하여 기록하였습니다. 티베트에서는 843년에 시작된 왕조의 분열에 의해 역경이 중단되었으나 11세기 이후 밀교 관계의 경전과 논서들이 번역되면서 적어도 네 차례의 대장경의 간행이 있었습니다.

 

13세기 경에는 처음으로 대장경이 목판에 의해 인쇄되었습니다. 이것을 나르탕 고판(古版)이라고 한다. 이후 나르탕 판은 1410년과 1602년에도 다시 새겨졌으나 1730년에는 달라이 라마 7세의 명에 의해 대규모로 개정되었습니다. 이것은 나르탕 신판(新版)이라고 하는데, 이후의 정본이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리탕판 및 그 밖의 판본을 근거로 하여 델게판이 개판(開版)되었으며,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대 이래로 티베트와의 교섭이 있었는데 8∼9세기에는 상당수의 한역 경전들이 티베트로 전해져 번역되었다.

 

 

5. 한역대장경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 경전의 총칭으로서 넓은 뜻으로는 중국, 한국, 일본의 불교인들의 저술도 포함합니다. 처음에 불교의 경전은 경(經), 율(律), 론(論)의 삼장(三藏)으로 분류되었으나 나중에 대승 경전이 출현하였기 때문에 삼장(三藏)이라는 분류가 적당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경전이 번역됨에 따라 중국인의 저서도 경전 속에 포함시키게 되면서 중국에서는 대장경(大藏經)이라는 새로운 말이 조성되었습니다. 즉 전체의 불교 경전을 대장경(大藏經) 혹은 일체경(一切經)이라는 총칭으로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에서 최초로 경전을 번역한 사람은 안식국의 안세고(安世高)인데 그는 주로 소승 경전을 번역하였으며, 월지국의 지루가참(支婁迦讖)은 주로 대승 경전을 번역했다. 그 후 점차 번역 사업이 성행하면서 번역 경전들을 바르게 전수하기 위해 목록을 작성하였습니다.

 

최초의 유명한 목록은 전진(前秦)의 도안(道安)이 작성한 "종리중경목록(綜理衆經目錄)" 1권인데 소실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전체 경전을 8록(錄)으로 분류하여 639부 886권을 수록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많은 경록(經錄)이 작성되었는데 유명한 것은 승우(僧祐)의 "출삼장기집" "법경록(法慶錄)" 비장방(費長房)의 "역대삼보기" 도선(道宣)의 "대당내전록" 지승(智昇)의 "개원석교록" 등입니다.

 

이처럼 많은 경록(經錄)들이 발간되면서 점차 불교 경전의 분류도 일정하게 되었는데 특히 "개원석교록(開元石敎錄)"의 입장록(入藏錄)이라는 분류가 후세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개원석교록에서는 일체경(一切經) 1076부 5048권을 대승경(大乘經), 대승율(大乘律), 소승경(小乘經), 소승율(小乘律), 소승논(小乘論), 현성집(賢聖集)의 7부로 나누고 현성집의 108부 541권 중에 인도 논사들의 전기류나 중국인의 저작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처음에 대장경은 대개 필사(筆寫)에 의해 전래되었으나 송나라 시대 이후 목판 인쇄에 의해 간행되었습니다. 송판(宋版)의 제1회 간행본인 촉판(蜀版) 대장경은 5000여 권을 담았는데 그 후 수 차례 송대(宋代)에 간행되었습니다. 아울러 계단판(契丹版), 고려대장경 같은 대장경이 중국 밖에서 간행되었으며, 원나라 시대의 원판(元版)이 있고, 명대(明代)에서도 두 차례 간행되었습니다.

 

고려대장경은 현존하는 대장경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며, 여러 차례의 교감(校勘)을 거친 것압니다.

고려대장경은 고려에서 간행된 것으로 초조(初雕) 대장경, 속장경(續藏經), 재조(再雕) 대장경이 있으며, 초조대장경은 고려 현종(1010∼1031)때에 간행되었고, 속장경은 대각국사 의천이 간행하였고, 재조대장경은 고종(1214∼1259)때에 간행한 것으로 현재 해인사에 있는 대장경입니다. 고려대장경은 현재 학계에서 널리 이용하고 있는 일본의 활자본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의 저본이 되었습니다.

 

대정신수대장경은 19세기말 일본에서 활자화된 것으로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하면서도 경을 독자적으로 분류하였고, 송(宋), 원(元), 명(明)의 대장경을 대교(對校)하고 정창원(正倉院)에서 소장된 7세기의 천평사경(天平寫經) 및 6∼8세기의 수(隨), 당(唐) 사경(寫經)과 대교(對校)하였으며, 돈황사본으로부터 많은 경전을 선택하고 중국과 일본의 불전을 다수 증보하여 현재 활자판으로 간행된 대장경으로는 가장 우수합니다.

 

모두 100권인데 인도와 중국의 찬술부가 55권(1∼55), 일본 찬술부가 29권(56∼84), 돈황사본 1권(85), 도상부(圖像部) 12권, 목록 3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의 55권은 대개 지금까지 전해져 온 대장경의 내용에 상당한다. 여기에는 2265부 9041권이 실려있습니다. 제85권인 돈황본은 고일부(古逸部)와 의사부(疑似部)로 나누어져 있으며, 도상부(圖像部) 12권은 불교미술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수록한 것입니다. 목록 3권은 각종 대장경의 목록을 시작으로 하여 온갖 종류의 목록을 망라한 것인데, 이를 통해 대장경의 내용과 유명 사원들이 소장한 일체경(一切經)의 내용 등을 알 수 있습니다.

 

 

6. 위경

 

불교에서 경전이라 하면 원칙적으로 부처님이 직접 설파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문헌을 말하나, 이 외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그의 행적을 다루는 문헌으로서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이나 다름없는 권위를 인정받는 문헌도 한문으로 번역된 경우 경이라 불러지고 있습니다.

 

위경(僞經)이란 말 그대로 부처님이 설한 것처럼 위조된 경전을 가리키는데 실제로는 반드시 그러한 원칙에 의해 위경(僞經)과 진경(眞經)이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도에서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경전을 편찬하는 풍습이 성행함으로써 부처님이 설한 순수한 교리와 혼동되는 예가 적지 않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대승경전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대승경전을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큰 잘못이며 위경이란 중국 등지에서 새로 제작된 경문만을 이르고 인도나 티벳에서 전래된 것들은 모두 진경이라 간주되어 삼장에 편입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티벳에서도 위경들이 상당히 제작된 기록이 있어 굳이 진경과 위경에 대해 정의를 내리자면 산스크리트 원본 등으로부터 번역된 경전을 진경 또는 정경이라 칭하고 산스크리트 경에서 번역된 경전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들을 위경 또는 의경이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위의경(僞疑經)이라는 호칭도 사용되는데 중국에서 편찬된 경전 목록 즉, 경록(經錄)에 의하면 작위로 의경과 위경을 구별한 경우도 있습니다. 한역된 경전으로 보기에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경전을 의경이라 하고 위조된 것임이 확실한 경전을 위경이라 합니다.

 

결국 진경과 위경을 가리는 기준은 원전이 불교의 본산지인 인도에서 제작되었느냐의 여부와 그 원전의 언어가 산스크리트인가 아닌가의 여부에 있을 것입니다. 팔리어의 경우엔 그로부터 한역된 예가 매우 드물어서 크게 문제되지 않으나 여러 종의 경록이 편찬된 중국에는 상당한 양의 위경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남북조 시대엔 46부 56권, 수나라 시대엔 209부 490권, 당나라 초기엔 406부 1074권의 위경들이 비약적으로 증가되었음을 볼 수 있으며, 특히 "개원석교록"이라는 유명한 경록이 대장경에 편입된 것으로 수록하고 있는 문헌의 수가 1076부 5048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는 많은 위경들이 유통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불교의 완성기라고 하는 수(隨)와 당(唐)의 시대는 위경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는데 이러한 위경들은 당시 난해한 불교교리를 이해하는 데에 소질이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와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권위를 인정받지 못함으로써 대장경에서는 모습을 감추었지만 민간에서는 끊임없이 이들 위경들이 진경과 마찬가지로 신봉되어 남 몰래 서사(書寫)되고 널리 유포되었습니다.

 

수·당 시대 유행했던 위경들도 송나라 이후에는 거의 사라지고 그 편린이나 이름만이 간신히 남아 있다가 근래 돈황에서 발견된 문헌들을 통해서 당시 위경들의 면모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국의 법을 밝힌 것으로 유명한 "인왕반야경"도 위경임이 밝혀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보살의 계위를 논하였던 "범망경(法網經)"(초기경전 중의 범망경과는 다르다)은 남북조시대에 있어서 통치자의 비법과 승려의 비행을 바로잡으려는 의도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과 연관있는 유명한 경전으로는 "보살영락본업경"도 위경이라 간주됩니다. 위경이라 하여 무조건 배척하는 선입견도 크게 잘못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위경인 줄도 모르고 경이라면 무조건 신봉하는 것도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경이 큰 영향을 끼친 예로서는 중국의 삼계교가 있습니다. 말법시대의 중생구제를 위한 강력한 실천을 내세웠던 삼계교는 "상법결의경"이라는 위경을 중요한 근거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 경전은 6세기후반의 불교를 둘러싼 사회적 여건을 반영한 것으로서 불교계의 타락과 헛된 신행을 지적하며 반성과 개혁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위경에 있어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비 불교적 요소의 삽입입니다.

 

이 경우 도교의 영향을 받은 위경이 많으며 "점찰 선악업보경"이라는 위경에서 설명하는 점찰법이란 나무 바퀴를 가지고 과거 세상의 선,악업과 현세의 길흉화복 등을 점치고 흉사가 나타나면 지장보살을 예참하여 죄를 멸하고 장애를 제거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불교의 본래 입장이 아닐 뿐더러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당연시되고 있는 신행이 혹시 과거에 유행했던 위경에 의한 그릇된 것이 아닌지를 항상 점검해 보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출처 : 禪香을 맡으며...
글쓴이 : 포대화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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